10.30.23 (월) 왕상22:29-40 <아합왕의 최후>
1. 열왕기상의 마지막 장은 아합의 죽음과 아합과 화친했던 유다 왕 여호사밧에 대한 묘사 그리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에 대한 평가를 기록합니다. 아합은 누구보다 많은 선지자들을 만났던 왕이 었습니다. 이 말은 그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할 기회를 많이 얻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인생을 바르게 살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며 실로 큰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참된 하나님의 말씀과 거짓된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함으로써 엘리야의 예언대로(21:19) 멸망의 길을 가고만 비극적인 인생을 살고 말았습니다.
3. 아합 시대에 유다와 이스라엘의 평화가 시작 되었습니다(1,44절). 아람과 잠시 평화 관계를 유지했고, 왕국의 분열 이후 끊임없이 계속되던 전쟁은 유다 왕 여호사밧이 즉위한 뒤 평화 모드로 들어가 아합과 여호사밧은 결혼동맹까지 맺게 됩니다. 하지만 이 평화는 하나님 앞에 선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4. 사람의 계산에 따른 좋은 것이 언제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아람과의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은 400명의 선지자 (아람과 싸우러 가라)와 미가야 (전투에서 왕은 죽게 되실 것입니다) 라는 대립되는 예언 중 결국 길르앗 라못에서 아람과의 전투를 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29절)
5.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아합이 살아온 방식이었습니다. 미가야의 예언이 마음에 걸린 아합은 여호사밧을 이스라엘 왕으로 변장하게 하고 자기는 일반 군사들 속에 들어가서 전쟁을 하지만,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는 자신을 겨냥해 쏜 화살이 아니었지만, 그 화살에 맞았고 결국은 죽고 맙니다.
6. 나봇의 포도원 사건 이후 아합왕은 하나님께 겸손하고 회개하는 듯하더니 3년이 지난 후 또 다시 교만해지고 포악 해졌습니다. 그는 오로지 영토회복에만 관심이 있지 정작 자신의 영혼의 회복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엇던 것입니다.
7. 네페쉬이라는 히브리어는 영혼이라는 말도 되고 생명이라는 말도 됩니다. 영혼이 곧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영혼 잃으면 생명 잃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8. 생명을 잃으면서까지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합은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살아온 인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9. 주님. 그 어떤 회복보다 영혼 회복이 중요함을 인정합니다. 영혼(신앙)을 팔아 영토(육신의 것)를 얻는 것은 생명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토회복을 위해 영혼을 파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잃어버린 영적인 삶의 회복을 간절히 원합니다.라고 말입니다.
10. 아합이 죽은 후 사마리아 연못에서 그의 병거를 씻자 개들이 그의 피를 핥습니다. 그렇게 엘리야의 심판 예언(21:19절)은 성취됩니다. 하나님은 아합의 화려한 건축물들이 아니라, 그의 탐욕 때문에 무고한 나봇이 피를 기억하셨습니다. ‘죄와 함께’ 쌓여 가는 재물과 지위와 명성은 다 헛될 뿐입니다. 삶을 통해 순종한 말씀의 흔적들이 내 인생의 요약이 되게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