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23. 욥5:1-27 <엘리바스의 훈계>
1. 어제 4장에 이어 오늘 5장도 욥을 향한 엘리바스의 훈계가 계속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난 당한 욥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세 친구 중 엘리바스는 가장 나이가 든 연장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의 신앙적인, 신학적인 지식이 경험만큼 풍성했습니다.
2. 그가 말하길 "고난이라고 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성숙될 수 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은 믿음을 단단하게 하시고, 진정한 신앙인으로 자라나게 한다"는. 이런 목사의 설교 같은 멋진 말을 합니다. (17절)
3. 엘리바스가 욥을 향하여 말하는 신앙고백과 신학적 논리는 틀린 것이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신앙고백과 정확한 신학적 지식이 전혀 욥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픔중에 있는 욥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지적과 정죄보다 참된 위로가 먼저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4. 항상 옳은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 옳은 말을 하는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누군가 제게 이런 좋은 말을 해주었습니다. <말을 하기 전에 생각해야할 3가지> 첫째, 이 말이 옳은 말인가? 둘째, 이 말이 필요한 말인가? *셋째, 이 말이 친절한 말인가? 라는 것입니다.
5.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엘리바스는 마치 옳은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중요한 두가지를 놓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엘리바스가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하는 듯한 말을 했지만, 결국 하나님을 자신의 경험적이고 지식적인 틀 안에서 이해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은 그 무엇으로도 제한받거나 판단 받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자주 범하는 잘못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제한하여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지식으로 하나님을 또 하나님의 일하심을 규정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7. 엘리바스는 고통의 원인을 죄에서만 찾았습니다. 그러나 고통에는 우리의 지각을 넘어선 다양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통의 원인을 찾기에만 집중하기보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하고 나는주님께 집중하며 주님이 일하시도록 마음과 삶을 열어 두어야 합니다.
8. 두번째로 엘리바스가 간과한 것은 주님의 시선을 놓친 것입니다. 그는 주님의 시선을 갖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긍휼함으로 상대를 바라보지 못한 것입니다. 늘 바른 소리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른 소리보다 주님의 시선이 담긴 사랑의 진심과 눈물 한 방울의 기도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9. 하나님, 고난 앞에 설 때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돌아보게 하시고, 고난에서도 하나님의 신뢰를 잃지 않게 하옵소서. 또한 고난 중에 있는 이웃을 돌아보며 섣부른 내 생각으로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그 고난을 함께 아파하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