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금).23 욥31:24-40
<욥의 변론 마지막 말>
1. 오늘 본문 마지막절인 40절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욥의 말이 그치니라" 이후에 욥의 말은 엘리후의 말과 하나님의 질문에 짧은 답변 외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2. 그래서 31장은 법정용어로 하면 ‘최후변론’과도 같습니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기 전에 죄수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지를 묻듯이, 욥은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마지막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욥은 마지막 말을 하면서, 친구들이 얼마나 무지막지한 말로 자신을 공격했는지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제 본문은 자신이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으로, 또 오늘 본문은 신앙적으로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말합니다.(24-34절)
4. 본문을 묵상하면서 느끼는 점이 몇가지 있었습니다. *하나는 서로 간에 이토록 긴 대화가 오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이에 있는 그 누구도 욥의 진실함에 대해서 인정해주거나,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5. 세상은 그런 곳인것 같습니다. 내 사정을 알아주는 이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또 관심을 가지고 알아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후 3장에서 말세의 징조를 말할 때 "무정하다"는 특징을 넣은것 같습니다.
6. “무정하며- without natural affection”(딤후3:3)란 뜻은 동물들을 포함한 어미와 새끼 사이의 본능적인 애정 즉 모정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런고로 ‘무정하다(아스토르고이)’라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인 모정마저 사라진 시대라는 뜻입니다.
7.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십니다. 모든것을 정확하게 보고 알고 판단하시고 계신 분입니다. 욥이 지금은 안타까워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 모든 안개가 걷히고 답답함이 사라짐까지 인내하는 믿음도 이것을 믿었기 때문 입니다.
8. *또 하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결코 후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욥의 경외심은 그저 놀랍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믿음입니다. 그 경외심이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되었습니다.
9.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께서 욥 앞에 대면하여 대답을 주실 때, 욥은 이렇게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욥42:5-6)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 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10. 하나님. 저희에게도 욥의 인내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욥이 끝까지 하나님만을 바라 보았던 것과 같이, 저희도 어떤 순간에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눈이 흔들리지 않게 하시며, 오직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내게 두려운 일이 되지 않게 하시며, 오히려 평안과 기쁨과 안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