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수).24 막11:1-11
<겸손의 왕>
1. 본문은 종려주일에 많이 설교하는 부분으로,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말씀입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여기부터 16장까지가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의 행적을 기록합니다.
2. 본문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의 일입니다. 본 기사의 특이성은 여러 측면에 있습니다. *첫째는 총 8차례에 걸친 예수님의 예루살렘 방문중 다른 때는 다 걸어서 오셨지만, 이번만은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입니다.
3. 왜 예수님은 좋은 말들 다 제쳐 두고, 새끼 나귀를 타고 오셨을까요? 예수님은 분명한 의도를 가지시고 새끼 나귀를 고르셨습니다.
4. 그것은 놀랍게도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구약성경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5. *두번째는 나귀타고 예루살렘 입성하신 주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을 묵묵히 감당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민수기 19장 2절과 신명기 21장 3절에서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멍에 메지 아니한 짐승은 신성한 목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짐승이었습니다.
6.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타고 계신 나귀는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짐승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상징입니다. 실제로 드려진 이는 나귀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죽음을 아시고 감당하시기 위해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7. *셋째로 "주가 쓰시겠다"(3절)는 말은 우리가 가진 것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청지기 일뿐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 시간, 달란트, 그것은 우리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필요로 할 때 사용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8. *넷째는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다른 것입니다. 호산나(Save Now)라는 많은 사람들의 환영에 어울리는 입성은 명마를 타고 개선문으로 오셨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열렬한 환호에 관심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 것은 이 많은 사람들의 들 뜬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왕좌에 오르기 위해 예루살렘에 들어온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10. 오늘 예수님의 우리 마음을 예루살렘 삼아 나귀 타시고 찾아 오십니다. 오늘을 사는 바로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며 십자가의 길로 찾아 오십니다. 그 길을 오시며 나의 구원의 문을 열기 위해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