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목) 민22:21-35 묵상 <말하는 나귀의 교훈>
1. 오늘 본문에는 계속해서 발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압왕 발락의 집요한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길을 나선 발람과 그를 막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 듣기를 원합니다.
2. 발람은 오늘 본문까지 벌써 3번째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민22:12) 하나님께서는 발람과의 첫만남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저주를 금하셨고 모압과 미디안 사람들과의 동행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이미 발람에게 하나님의 뜻은 온전히 전달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발람은 돈에 눈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싶은 마음을 계속 붙잡고 있었습니다.
3. 그런 발람에게 하나님은 민22:20절 두번째 나타나셔서, 모압의 요청대로 그들과 동행 이동해도 좋다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허락은 발람이 준비한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를 용인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음에도 자기 탐욕에 속아 악한 모의를 중단하지 않는 발람과 모압 사람들에게 더 명확하고 분명한 방법으로 책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4. 하나님은 발람의 나귀를 사용하셔서 영적인 무지와 완악한 인간 발람의 밑바닥을 드러내십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서자, 좌우에 있는 담으로 인하여 앞으로 가지 못하고, 나귀가 몸을 담에 대자 발람이 하고 채찍질하자 나귀는 발람 밑에 엎드립니다. 발람이 노하자 나귀가 입을 열어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때리느냐 항의합니다.
5.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밭으로 곤두박질 쳤던 나귀는 발람 편에서 보면 주인의 뜻을 거스르는 우둔하고 고집센 짐승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앞에 섰던 발람을 상징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은 '우둔하고 고집센 나귀와 같은 존재'가 '너 발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은 하찮은 짐승이라도 하나님의 도구로 쓰십니다. 그래서 나귀를 통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발람은 나귀의 탄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탐욕으로 영안이 흐려진 발람은, 나귀가 발을 돌담에 비벼대도, 생전 해보지 않은 일까지 해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7. 나귀도 사용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부족한 사람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탄식과 신음까지도 하나님의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감각이 필요합니다. 만물을 주관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8. 신앙은 내 고집을 빨리 꺾는 것입니다. (31-35) 나귀는 하나님의 사자를 알아보는데 발람은 보지 못합니다. 도리어 나귀를 채찍으로 치고, 지팡이로 때리고, 나중에는 칼이 있으면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화를 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발람의 눈을 밝히시자 비로소 여호와의 사자를 보게 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립니다.
9. 발람의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유보적 태도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과 발락이 준비한 복채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물질에 나약한 인간의 단상을 보여줍니다.
발람이 '유보적 삶'이 발람이 살아냈던 하나님 말씀 앞에서의 그 유보적 삶이 우리 삶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내지 못하게 하는지 그 실체를 깨닫는 오늘 묵상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0. 살아계신 하나님, 발락이 제시한 돈의 눈이 멀어 하나님의 말씀과 발락의 요청 사이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나약한 발람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읽습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단호하고 분명하게 하나님 편에 서는 우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