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6(금). 롬10:5-13
<의에 이르는 두 가지 길>
1. 유대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6절)가 아닌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5절)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믿었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란 무엇일까요?
2. 오늘 본문 5절은 레위기 18:5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유대인들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했다고 합니다. (Lab주석). '율법을 준수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 하나님 안에서 구원받는 방법은 오직 율법을 완벽무결하게 지키는 것에 있었습니다.
3.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와 결코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왜 주셨을까요? 율법은 본래 롬7:7장과 같이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특히 자신의 죄)이었습니다. 즉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 은혜가 아니고서는 살 수 없음을 깨닫고, 우리를 구원할 이는 오직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시인하고 고백하기 위함(9~10절)이라는 것입니다.
4. 4절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그래서 어제 4절도 같은 맥락에서 율법을 온전히 이해하게 되면, 결국 예수그리스도가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바울은 말했던 것입니다.
5. 그럼에도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로 생각을 전환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신명기 30:12~14절 말씀을 인용하면서(6~7절)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6. 결국 참된 의, 구원은 무엇으로 얻을 수 있을까요? 8~10절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7. 예수님을 주로 시인해야 합니다. 아니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고 시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으로 번역된 헬라어 '퀴리오스'는 구약에 나오는 야훼의 헬라어 번역 '퀴리오스'와 일치합니다. 즉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이 세상을 지으시고,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8. 그러면 비로소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됩니다. 12~13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9. 그런데 이 구원에 이르는 길은 결코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 헬라인, 모든 열방의 사람들에게까지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의 이름, 우리 주 예수를 나의 주로 부르는 자라면 그 누구라도 말입니다 .
10. 우리는 오늘 본문의 11절 말씀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나의 주로 시인할때, 주님께서 우리를 부끄러움 당하게 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아니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삶을 더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되기를 소망합니다.